도난 후 되찾은 「달성 유가사 영산회 괘불도」 등 3건 보물 지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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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4-12-31 22:30본문
- 국가유산청, 조선 후기 괘불도, 고려 및 조선시대 전적 등 총 3건 보물 지정 예고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조선 후기 괘불도인 「달성 유가사 영산회 괘불도」를 비롯해 「대방광불화엄경소 권118」, 「삼봉선생집 권7」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하였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달성 유가사 영산회 괘불도(達城 瑜伽寺 靈山會 掛佛圖)」는 1993년 도난되었다가 2020년 환수한 유물로, 화기(畫記)에 있는 기록을 통해 1784년이라는 제작 연대와 영산회라는 주제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이다.
도난 과정에서 화기 일부가 훼손되어 이 불화를 그린 승려들은 알 수 없지만 머리와 얼굴의 형태, 신체의 비례와 표현 감각, 각 도상의 배치와 곳곳에 사용된 다양한 문양 소재 등으로 볼 때 18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유성(有城) 화파(畫派)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 화기: 불화 하단에 제작 연대, 봉안 장소, 제작 목적, 시주자, 제작자 명단 등을 적은 것
이 괘불도는 석가여래를 압도적으로 크게 그리고,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을 화면 상단에 작게 배치한 삼신불 형식을 띠고 있다. 서산 개심사 영산회 괘불도(1772년)에서도 이와 같은 구도가 확인되지만 본존이 앉아 있는 형태인 좌상(坐像)으로 표현된 괘불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이 시기의 괘불이 10m를 넘거나 이에 조금 못 미치는 것이 대부분인데 반해, 이 괘불은 폭 약 4.5m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은 소형인데, 이는 사찰의 공간 배치를 고려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괘불도를 통해 당시 유가사의 공간 구성과 사찰의 규모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도난 과정에서 상하축이 잘려나가고, 일부 색을 다시 칠한 부분이 있으나, 본존을 좌상 형식으로 그린 영산회 괘불이면서 삼신불로 구성한 점은 불교도상 연구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소 권118(大方廣佛華嚴經疏 卷百十八)」은 당의 승려 징관(澄觀, 738∼839)이 지은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疏演義鈔)』에 대하여 송의 승려 정원(淨源, 1011∼1088)이 상세하게 해설을 단 『대방광불화엄경소』의 전체 120권 중 권118에 해당하는 불경이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이 고려로 귀국할 때 송의 정원이 한 질을 선물로 주었고, 이에 의천이 항주(杭州)의 각수(刻手)인 엄명(嚴明) 등에게 판각을 부탁하여, 1087년(고려 선종 4) 3월에 송의 상인 서전(徐戩) 등이 2,900여 경판을 가지고 들어오면서 고려로 전해졌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이 경판을 가지고 책을 찍었으나 일본이 여러 차례 경판을 요청해옴에 따라 1424년(세종 6) 다른 경판들과 함께 일본에 하사한 이후로는 더 이상 인출본을 찾아볼 수 없어 가치가 크다.
* 각수: 나무 또는 돌 등에 글자나 문양을 새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고려 말~조선 초에 인쇄된 이 책 끝에 ‘만력30년임인(1602)11월경견인원시봉일웅(萬曆三十年壬寅(1602)十一月敬見印源侍奉一雄)’이란 기록이 있는데, 2011년 보물로 지정된 『대방광불화엄경소』 권114의 뒷면에도 비슷한 내용이 확인되고 있어, 책을 찍은 후인 1602년(조선 선조 35)경의 전래 내력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표지는 상수리나무 열매로 물들여 만든 종이인 상지(橡紙)이며 표제는 금니(金泥)로 썼다. 보존 상태도 우수하며 국내에 남아 있는 동일한 판본의 『대방광불화엄경소』 가운데 유일하게 알려진 것이다.
* 금니: 아교에 개어 만든 금가루
대각국사 의천이 완성하고자 했던 대장경의 주석서 집성 과정과 경판의 후대 전래, 이와 연관된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이 수입 경판을 일본에 하사한 사실을 통해 한·중·일 삼국의 불교교류 양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 주석서: 어려운 책을 쉽게 풀이하여 해설한 책
「삼봉선생집 권7(三峯先生集 卷七)」은 여말선초의 학자이자 문신인 정도전(鄭道傳)의 문집이다. 정도전의 문집은 1397년(태조 6)에 처음으로 아들 정진(鄭津)이 『삼봉집』이라는 서명으로 간행하였는데, 이는 정도전이 평소 정리해두었던 글을 정리해 엮은 것으로 권근(權近)의 서문이 실렸다. 그러나 이 책의 판본은 정도전이 왕자의 난에 연루되어 생을 마감하면서 흩어져 없어졌다.
이후 정도전의 증손인 정문형(鄭文炯)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직하던 1465년(세조 11) 흩어진 초간본(初刊本)을 바탕으로 내용을 보태 『삼봉선생집』이라는 제목으로 안동에서 간행하였는데, 이는 중간본(重刊本)으로 불리며 총 7권본의 구성이다. 이후 정도전의 문집은 정문형이 강원도관찰사로 재직하던 1487년(성종 18) 강릉에서 다시 『삼봉집』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되는데 이를 삼간본(三刊本)이라 하며 총 8권으로 되어 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되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삼봉선생집』은 중간본의 권7에 해당하는데, 「불씨잡변(佛氏雜辯)」, 「심기리편(心氣理篇)」 등의 내용과 함께 정진의 초간본 발문(跋文)과 정문형의 중간본 발문, 간행 관계자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지정 예고 대상본에만 수록되어 있는 이러한 기록은 『삼봉선생집』의 간행과 전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크다. 또한 희소한 조선 초기 문집 가운데 하나라는 점, 현재 전하는 다른 판본과의 비교 검토가 가능하다는 점,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라는 인물의 역사적 중요도 등으로 볼 때 학술적 가치가 높다.
* 발문: 작품의 마지막에 실리며 전체적인 내용, 제작 경위 등이 담김.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달성 유가사 영산회 괘불도」 등 3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한 후,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또한, 정부혁신과 적극행정의 일환으로 우리 문화유산의 숨겨진 가치를 재조명하고 보다 합리적인 지정제도가 정착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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